본문 바로가기

번역/소설

여성향 게임의 히로인으로 환생했지만 사랑을 모르겠습니다. 

여성향 게임의 히로인으로 환생했지만 사랑을 모르겠습니다. 

작가: 黒井雛

==

"너 같은 건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을거야." 

사사건건 그렇게 말한 언니의 얼굴을 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지금의 제가 태어나기도 전, 이른바 전생에서 언니였던 사람의 기억이니까요. 
그저 미인은 멸시하는 표정도 예쁘네-, 라고 떠올린 기억만 있습니다. 

언니는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미인이었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나 미움을 받는, 추악한 여자였습니다. 
언니는 항상 그 추종자들에게 둘러쌓여 찬양받던 한편, 저는 자매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추종자들은 언니와 함께 있는 걸 막았습니다.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못생긴 저는 어렸을 때부터 겪어왔던 이런 환경이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괴롭거나, 원망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일상이었으니까요. 

언니와 저는 정반대라고 말해도 될 만큼 달랐습니다. 
혹시나 하고 호적을 조사한 결과 언니와 피가 이어지지 않은 의자매인걸 알았을 땐 상처를 받기 보다 납득이 됐습니다. 

언니의 추종자가 언니 앞에서 저를 욕하면, 언니는 언제나 저를 필사적으로 감싸주었습니다. 
하지만 단둘이 되면 다른 사람들에겐 절대 쓰지 않는 욕설로 ‘넌 절대로 사랑받지 못해’라고 끊임없이 반복했습니다. 
언니의 말은 틀리지 않아서, 저는 항상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러나 언니는 저의 그런 태도에 "울기라도 하란 말야."라며 짜증스럽게 혀를 찼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미운 오리 새끼. 네가 백조가 되는 날은 오지 않아." 


언니의 말은 제 가슴에 상처를 주지 않았습니다. 
눈물이 넘치기는 커녕 슬픔이나 아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당연한 일, 이였으니까요. 
그보다 언제나 저에게 차가운 말을 내뱉는 언니야말로 어딘가 괴로운 것 같았습니다. 사랑 받는 사람은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에겐 모르는 고충이 있었던 걸까요. 
언니는 저 이외의 사람 앞에선, 반짝 반짝 빛나는 태양처럼 굉장히 상냥한 사람이었습니다. 
저에게 하던 행동들은 절대로 남에게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항상 아름다운 모습으로 있는 건 답답해서 숨이 막힐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언니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무심코 말했더니 "사랑 받은 적이 없는 네가 뭘 알아!!"라며 화를 내고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화나게 만드는 것은 상관 없습니다. 저란 존재는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 언니를 짜증나게 만드니까요. 
하지만 언니를 울려버린 건 너무나 후회스런 일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인형처럼 무표정한 인간」으로 불리는 저이지만, 그때만큼은 태어나서 처음 겪는, 가슴이 조여드는 듯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다시는 그런 경험, 하고 싶지 않아요. 
언니의 고통이 저를 매도해서 풀린다면, 그게 가장 나은 거라고,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너 따윈 현실에서는 결코 사랑 받지 못하니까, 적어도 게임에서라도 겪어보던가.” 

바보 취급을 하는 것 같이 건내준 「여성향 게임」은, 제가 16살이 되던 때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은 생일 선물이었습니다. 
언니는 그 자리에서 평소와 같이 제가 얼마나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인지 말한 뒤, 금방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이후, 감사 인사를 하려고 할 때마다 말을 돌려, 결국 마지막까지 언니에게 전할 수 없었습니다. 

모처럼 언니가 준 것이니까, 라면서 저는 언니의 오래된 게임기로 그 게임을 했습니다. 
게임의 주인공은 언니처럼 예쁜 여자였습니다. 
선택지를 골라 행동하면, 주인공은 상대로부터 사랑 고백을 듣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전하는 모습은, 마치 언니의 추종자가 언니에게 하는 것과 무척 닮아있었습니다. 

(그렇구나, 이게 사랑 받는다는 행위) 

저는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처럼 게임을 공략해나갔습니다. 
언니는 자신이 준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것에 화를 내며 자주 방해를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이미 게임에 빠져든 저는 언니의 방해에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석달이 지날 즈음엔 모든 선택지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며 게임의 모든 엔딩, 스틸, 이벤트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오타쿠, 진심 징그러." 

언니는 그렇게 말하면서 차가운 눈으로 봤지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즐거웠습니다. 게임을 통해서 자신이 결코 손에 들어오지 않을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됐으니까. 


그런 들뜬 기분으로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언제나 지나다니는 교차로에서 과속으로 돌진해 온 승용차를 눈치채지 못하고 치였던 건. 
즉사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의식이 있던 덕분에, 최후에 생각한 것만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공포와 세상의 미련은 없었습니다. 
제가 죽은 걸 슬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다만 언니는 화를 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니는 제가 자신의 눈에 닿지 않는 곳에서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멋대로 죽는 걸 언니에게 마음 속으로 용서를 빌면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ー그리고 정신이 들자, 저는 제가 클리어 한 여성향 게임의 주인공으로 환생했습니다. 

한동안은 알아채지 못한 채 아기가 돼버린 전 시간의 흐름을 따라 성장했습니다. 
자신이 전생의 게임의 주인공으로 환생한 사실을 깨달은 건 5살 때였습니다. 
게임의 주인공은 상당히 눈에 띄는 외모와 이름을 가졌기에, 조금은 의심을 했습니다만, 거기서 결정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공략 캐릭터 중 한명과 만남 이벤트가 발생한 것입니다 
「사실은 어릴 적에 만나서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는, 운명적인 느낌을 내기 위한 이벤트. 
이벤트 자체는 순식간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상대가 첫눈에 반하고 일방적으로 결혼 약속을 해버린 내용이었기에,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다만 자신이 게임 속에 환생한 걸 받아드린 건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의 일. 

사랑 받지 못한 저를 불쌍히 여긴 하나님이 저에게 사랑 받을 기회를 준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게임에서밖에 몰랐던 「사랑」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알고 싶어졌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아직 남아 있는 내성적이고 못 생긴, 아무에게도 사랑 받지 않는 원래의 성격은 방해됩니다. 게임의 주인공 같은 사교적이고 밝은 성격이 되어야 했던 겁니다. 
다행히도 지금의 저는 주인공의 아름다운 모습과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부여 받고 있었습니다. 
천성적으로 결여된 성격적인 밝음은, 전생의 언니의 행동을 흉내내는 것으로 메우기로 했습니다. 언니를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봐온 저라면 언니가 어떤 행동을 할지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순식간에 인기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더 쉬운 일이 되었습니다. 게임의 이벤트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이벤트의 최선의 선택지대로 행동하면 쉽게 끝낼 수 있었습니다. 

정신이 들자 게임의 공략 캐릭터들은 저를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틈만 나면 저에게 사랑을 속삭였습니다. 

"사랑해." 
"너같은 사람은 처음이야." 
"네가 없으면 난 죽을거야." 

저는 그 대사들을 겉으로는 행복한 척, 속으로는 아무런 감흥 없이 들었습니다. 
ー제가 간절히 원하던, 「사랑」은 이렇게 간단하고 가벼운 건가요? 
그들에게 한 행동과 말 모두 미리 정해진 것 뿐. 
제 마음 속은, 전생의 「인형」이었을 때와 다름없이 공허하고 추악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가 텅 빈 껍데기에 불과한 걸 모른 채, 자신들이 바라던 저의 모습에 「사랑」을 속삭입니다. 
오직 허구로만 가득 채워진 저에게. 
방식만 알면 누구라도 저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는데. 
보물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였다는 현실에, 마음이 허전해져 갔습니다. 



허구에서 태어난 가벼운 사랑은 역시 쉽게 무너졌습니다. 
저에게 사랑을 속이던 그들은 어느날, 전학 온 한 소녀에 의해 「진실의 사랑」을 배웠고, 저에게서 떨어졌습니다. 
외톨이가 된 저는 어딘가 안도감을 느끼면서 전학생에게 모여들어 사랑을 호소하는 그들을 관찰했습니다. 
그들이 찾아낸 「진실의 사랑」은 저에게는 아마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제가 그들의 언행으로 마음을 움직여진 것은 한번도 없으니까. 

저는 결함이 있는 인간. 
언니가 말한 ‘너 따위 누구도 사랑하지 않아’의 뜻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제 자신이 누구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남에게 줄 수 없는 것을 타인에게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사랑이란 꼭 그에 상응한 사람만 받을 수 있는 특별한 감정. 
저 같은 건, 가질 수 없는 것. 



"―너 같은 건,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을거야." 

-갑작스럽게 들린, 너무나 그리운 대사에 심장이 뛰었습니다. 
돌아보면, 과거 절 숭배하던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전학생이 저를 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녀와 전 초면입니다. 갑작스럽게 이런 말을 하는지 수상쩍게 생각하면서도 전학생의 말에 이견이 없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제 반응에 그녀는 기분이 나쁜 듯이 혀를 찼습니다.. 
-순간, 기시감을 느낀 저는 심장이 점점 빨라졌습니다. 

"다른 세계까지 쫒아가서, 너 따위를 사랑하는 유별난 건, 나밖에 없어." 

전학생의 얼굴이, 뇌리에 되살아난 언니의 얼굴과 겹쳐, 전 눈을 크게 뜰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지금, 뭐라고 한건가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자, 심장을 얻어맞은 듯한 답답함이 들어 가슴을 움켜쥡니다. 
몰려오는 현기증에 호흡이 잘 안되는데, 그게 너무 좋아서... 

-처음 맛보는, 감정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제 감정을 움직이는 것은 그녀 뿐이었습니다. 


그녀가 울었을 때 태어나서 처음「후회」과 「당황」을 기억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아픔을 알았습니다. 

그녀가 준 것이기 때문에 게임에 열중했습니다. 
그녀가 해보라고 권유했기에 게임에서 「사랑」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녀가 몇번이고 몇번이나 말해, 현생에서 「사랑」을 얻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아무래도 좋았던 「삶」을, 그녀가 화를 낼테니까, 최후의 최후에서야 「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습니다. 

욕설도, 잔소리도, 그녀의 말이기에 기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만 진짜 자신을 보여주는 것에 우월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모두 그녀였습니다. 
그녀만이 텅 빈 인형에 불과한 날, 인간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워서, 사랑 받는 사람. 

추하고 공허한 나와는 정반대인 사람. 

그 이상의 것을 원하는 건 금기였습니다. 

이렇게 추악한 제가 「그것」을 원하는 순간, 그녀를 더럽힐 것이 분명했습니다. 


아아-. 
그렇지만, 방금, 그녀는. 
이런 저에게. 


"언-..." 
"너는 나에게만 사랑받고, 나만을 사랑해야 돼.” 

입에 맴돈 그 호칭은, 잡아먹힐듯이 덮쳐온 입술의 틈에 휩쓸렸습니다. 


눈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흘러넘쳐, 뺨을 타고 내려가는 걸 느꼈습니다. 


ー저는 태어나서 처음... 아뇨, 두번째 인생에서 처음으로 「사랑」을 손에 넣었습니다.